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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영화사 |
153~166p, 412~422p |
2010년 11월 12일 |
프랑스 무성 영화 - 리처드 에이블 (153~166p)
파테-프레르에 의한 영화의 산업화
파테-프레르는 프랑스 영화 산업의 핵심 영화사로서 모든 부문을 주도적으로 산업화시켰다. 영화 장비에서 배급, 상영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규모의 회사로 성장하며 영화 산업을 이끌었다. 파테의 경쟁사로는 고몽 영화사가 있었고, 그 외 에클레르, 오베르의 영화사 등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영화 산업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영화의 종류는 시대에 따라 변해갔고, 그에 따라 영화 장르, 기법 등에서 체계적인 발전이 있었다. 영화사가들은 이러한 체계의 발전에 파테보단 바이타그래프, 바이오그래프의 공로가 컸다고 말한다. 표준화된 제작 과정의 구축과 함께, 영화를 예술성 있는 문화의 대열로 올려놓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이는 다른 장르로부터 영감을 얻거나 각색을 통해 이루어졌다. 영화 규격은 단일릴에서 1911년에 3릴이상의 장편영화가 나오면서 장편영화로 넘어간다.
제 1차 세계 대전 : 분리와 회생
프랑스 영화사는 전쟁 이전부터 약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전쟁으로 인한 후유증과 미국영화에 맹폭격으로 크게 쇠퇴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 다시 회생을 시작한다. 1915~18년 사이에 주요 장르였던 멜로드라마는 프랑스에서 재현과 서사의 통합구조라는 전략을 가장 발전시킨 장르이다.
<열광의 해> : 프랑스 영화의 재생
1922년 프랑스 영화는 상영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독일영화와 합작하지만 크게 실패한다. 1920년대 후반기 동안 프랑스 모든 메이저 제작사들은 경영 방식과 회사 체질을 바꿔나간다. 1920년대 프랑스는 영화 산업의 배급의 대부분을 미국과 독일에게 빼앗긴다. 반면 상영 부문에서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가 되었다.
연작영화는 1920년대 말까지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며 프랑스 영화의 독특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데올로기적 역사 영화, 사극 영화, 통속 멜로드라마, 사실주의 멜로드라마, 코미디 등이 프랑스 영화들의 주된 장르였다.
대중 예술로의 프랑스 영화 – 지넷 빈센도 (412~422p)
유성 영화의 도래와 인민 전선
프랑스 영화는 토키에 빠르게 적응한다. 이에 따라, 1931년 157편의 영화를 제작할 정도였고, 이후에도 1940년대를 제외하고 계속해서 130여편을 유지한다. 1930년대 미국영화가 프랑스 내 상영에서 2/3을 차지했지만, 대부분의 최대 흥행작은 프랑스 영화였다.
소리의 출현은 아방가르드에 치명타를 입혔다. 하지만, 연극과 음악계에서 스타들이 대거 출현하고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또한 뮤지컬과 영화화된 연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출현시켰다.
점령과 해방
독일에 점령되면서 독일자본으로 프랑스에서 운영하는 영화사가 운영되며 검열이 따랐지만, 이 때의 프랑스 영화관은 프랑스 영화들의 차지였다. 해방 후, 프랑스에 남겨진 상처를 이겨내기 위해서 영화 장르는 레지스탕스의 영광을 다룬 다큐멘터리와 픽션영화들이 주를 이루었다.
제 4 공화국
제 4공화국의 등장하며 프랑스에는 영화계 제반 원칙의 초석이 다져졌다. 그리고 프랑스 영화를 재건하고 현대화하려는 노력이 병행되었다.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후반까지를 프랑스 영화의 최고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TV도 영화의 경쟁상대가 아니었다. 해외적으로는 프랑스의 누아르 전통과 스릴러가 널리 소개되었고, 국내에서는 사극 영화와 코미디가 시장을 떠받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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